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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니야서 [한] ~書 [라] Prophetia Sophoniae [영] Book of Zephaniah

  1. 인물과 시대 : 스바니야라는 이름은 ‘야훼가 숨겨 주다’ 또는 ‘피신시켜 주다’라는 뜻이다. 이 예언자 이름은 길고도 특이한 족보 끝에 나오는데, 그의 선조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J. Heller, Zephamyas Ahnenreihe, Ein redaktionsgeschichtliche Bemerkung zu Zeph. 1, 1 VT, 1971, 9, 102~104 참조]. 어떻든 우리는 이 족보를 통해 이사야시대와 새 예언자 스바니야시대 사이의 연속성을 찾으려는 편집자의 노고를 엿볼 수 있다[H. Cazelles, Sophonie, Jeremie et les Scythes en Palestine, RV, 1967, pp.24-44 / J.P. Hyatt, The Date and Background of Zephaniah, JNES, 7, 1948, 125-133 / D. Williams, The Date of Zephaniah, JBL, 82, 1963, 77-88 참조]. 스바니야가 설교한 연대는 요시아시대(1:1), 그러니까 기원전 640~630년 사이로 추정된다(George, Deissier). 그리고 설교내용을 보면, 요시아왕(王)이 개혁을 시행하기 저의 예루살렘의 주변상황을 잘 살필 수 있으니, 당시 아시리아제국의 세력은 아주 대단해서, 유다의 조정이나 백성의 신앙까지 위협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천체숭배 사상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고, 아시리아제국도 유다왕국의 조정대신들을 마음대로 임면(任免)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1:8). 또한 암몬인들이 숭배하던 신 밀콤(Milkom) 숭배, 가나안의 토속신앙(1:4 · 5), 외국 문물(1:8), 거짓 예언자들의 만행(3:4), 폭력과 사회불의(1:11, 3:1-3) 등 숱한 폐풍(弊風)이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바니야는 이러한 여건 하에서도 성전(聖殿) 주위에 경건하게 머무르며(1:7 · 9, 3:5),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다(2:3, 3:12 · 13). 이와 같이 개혁을 열망한 그 저편에는, 당시 급변하던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루살렘의 정권교체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예언자의 정치관이 깔려 있다. 스바니야는 당시 성전 주위의 경건한 사람들이 숱한 폐풍의 책임을 아슈르와 니느웨라는 큰 두 성을 다스리던 아시리아 제국에 돌리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언서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에 출몰하며 괴롭히던 식트(Scythes)족을 물리칠 수 없을 만큼 약화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카젤(Cazelles)교수는 "스바니야가 자기 예언서 안에서 이집트의 26대 왕 프사메틱(Psametique 1세)이 팔레스티나로 원정(기원전 650)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며, 이 원정으로 인해 아시리아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의 정권이 교체되어 이스라엘이 구원되기를 염원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H. Cazelles, op.cit p.43].

  2. 스바니야서(書)의 구조 : 스바니야서는 다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위협(1:2-2:3) : 스바니야는 이 단락에서 주님의 날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아모스(5:18)와 이사야(2:7 이하)가 취급한 주제를 다시 다룬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날에 일어날 사태를 보다 풍부하게 묘사함으로써 우주적인 드라마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아나와’(‘anawah)라는,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기본적 자세를 나타내는 단어로 회개를 호소하고 있다. 이 단어의 어근은 생명을 얻으려면 정의를 사랑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지혜문학에 자주 등장하지만(잠언 15:33, 18:12, 22:4), 예언문학에서는 이 스바니야서에서 처음 나온다.

  ② 이방국가에 대한 신탁(神託)(2:4-15) : 이 단락을 스바니야가 직접 썼느냐 하는 문제는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부정적 태도로 나온 학자도 많았다[L.P. Smith, E.R. Lacheman, The Authorship of Zephaniah JNES, 9, 1950, pp.132~142]. 그러나 예언문학이라면 이방국가에 대한 신탁을 으레 취급하는 것이 상례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남은 자’에 대한 언급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9절 참조).

  ③ 예루살렘과 이방국가에 대한 고발(3:1-8) : 아모스서(1-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방국가를 하느님께 고발하기 위한 서두 및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교백성에게 내린 재앙과 처벌은 유다에 대한 전조(前兆) 내지 질타(叱咤)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락에서는 이교백성들이 유다의 처벌을 지켜보도록 불려지기까지 한다.

  ④ 약속(3:9-20) : 이 단락도 스바니야가 직접 기술하였느냐는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단락은 예배를 통해 작품화된 듯한 환희의 시편(12-18a)에 이어 국가 부흥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19-20절).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부흥이란 혹자의 주장과 같이 바빌론 유배에서의 귀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9-10절은 이교백성의 회개라는 주제에서 흩어진 백성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넘어가고 있다. 한편 11-13절에서는 예언자가 소중하게 여긴 ‘남은 자’와 그들 신앙의 자세를 나타내기 위해 성서에서는 처음으로 청빈을 가리키는 용어(‘ani’ 가난한 자, ‘dal’ 약자, 바싹 여윈 자, 비참한 자)를 사용하고 있다.

  3. 메시지 :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스바니야서도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다. 스바니야는 죄악이 교만에서 연유한다고 규정하고(2:10 · 15, 3:11), 그 죄악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밀어닥칠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그 재앙이란 바로 원수의 침략이다. 그러나 스바니야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죄악과 원수의 침공보다 미구에 다가올 하느님의 엄중한 처벌이다. 여기서 스바니야는 아모스가 천명한 바 있는 ‘주님의 날’이라는 주제를 다시 들고 나온다. 그러나 주님의 날에 벌어진 비극의 폭(幅)을 아모스보다 훨씬 넓게 확대시켰다. 다시 말해 우주전체가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멸될 때 이스라엘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주님의 날을 목전에 둔 비통한 음률은 그리스도교의 장례미사 노래(Dies Irae)뿐 아니라 괴테의 파우스트에까지 스며 있다. 그러나 비록 비극의 예고로 점철된 메시지지만 마지막 일말의 희망까지 말살시키지는 않았으니, 이는 스바니야가 소수의 ‘남은 자’에게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남은 자란 재앙에서 구원될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다(2:3). 그는 사회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영성적인 차원에서 이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즉 그들은 주님을 찾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굴종과 겸손의 뜻이 내포된 ‘아나와’(anawah)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바 3:11-12에 와서는 이 단어의 의미가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다. 즉 ‘가난하고’(ani, 아니) ‘비참한’(dal, 달) 이 백성은 주님에게 달려들어 피신처를 찾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는 거만한 사람들로서 뽐내기를 좋아하고 거짓과 불의에 젖은 사람들이다.

  스바니야서는 가난에 대한 사상이 점차 깊이 있게 전개되고 있다. 이 예언에서 말하는 가난이라는 말에는 물질적인 의미뿐 아니라 내적 영성적 의미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가난은 부침(浮沈)이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생명과 구원의 관건이 되는 인간의 근본적 자세로 간주되어 왔다. 다시 말해 인간은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연명해 나가는 비참한 존재임을 하느님 앞에서 인정하며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바니야는 ‘남은 자’를 ‘시온의 딸’(3:14-18)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패망하자 그 곳 백성들이 유다로 월남하여 수도 예루살렘의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시온의 딸이 바로 이 새 정착민인 것 같다[H. Cazelles, Histoire et geographie en Mi 4, 6-13’ in: Fourth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Jerusalem 1957, pp.87-89 참조]. 스바니야는 이 정착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패망하여 그 곳 형제들이(2열왕 17:6) 사마리아 제국으로 유배 갔지만, 그 제국은 멀지 않아 멸망할 것이며 아수르바니팔(Assurbanipal)의 세력도 약화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시온이 성전 주위에 머무르며 하느님과 가까이 있으니 그들이 시온의 성전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월남하여 피난 온 덕분이 아닌가.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너희가운데 계시다."(3:5 15 참조)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스바니야가 본 희망의 공동체가 지닌 특징을 살펴보자. 이 공동체는 물질적으로 빈곤에 시달리고 또 소수의 무리에 지나지 않지만, 불의한 재산은 탐하지 않는 초탈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자기들 가운데 계심을 믿고 의지하며, 역경 가운데도 하느님 승리의 표징을 찾을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진 공동체이다. 이 가난한 공동체는 오늘날의 교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온의 딸아 기뻐 소리쳐라"(3:14)는 스바니야의 환호성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루가 1:28)라는 신약성서의 서두를 장식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S. Lyonnet, Chaire kecharitomene, Biblica, 1939, 131~141]. (徐仁錫)

  [참고문헌] A. Gelin, Les Pauvres que Dieu aime, paris 1967 / G. Gerleman, Zephania, Lund 1942 / Milos Bic, Trois prophetes dans un temps de tenebres: Sphonie, Pari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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