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사제영성

                                                                    이상규(야고보)신부

1. 선생이며 학생인 사제

   사제는 선생이며 학생이라 했다. 신자들에게는 선생이나 그리스도께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강론대에서 자신의 신자들에게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생각난다.《이 곳 강론대에서 우리는 여러분들의 선생입니다.》바로 이어《그러나 유일한 스승님 아래 우리 모두는 동료 학생입니다.》¹⁾ 학생의 의무란 스승의 말씀에 경청하고, 똑똑히 이해하려 애쓰며 기쁨으로 배운 바에 매진한 연후 터득한 모든 것을 충실히 그리고 열렬히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스승에게 순종함으로써 “길들여지는 것 (docilitas)”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제는 우선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하겠다. 그 말씀이란 다름 아닌 성서와 성전(聖傳), 그리고 교회를 통해 울려 퍼지는 말씀이다. 성서를 꾸준히 읽고 공부하며 묵상할 의무가 사제에게 있음은 공의회 역시 강조하고 있다.〈계시 헌장〉의 내용을 모르는 사제는 없을 것이다.《모든 성직자, 특히 그리스도의 사제들과 다른 이들, 곧 부제나 교리교사들처럼 위임받아 말씀의 봉사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하느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전하고 속으로 경청하지 않는 빈 설교자”²⁾가 되지 않도록 꾸준한 영적 독서와 진지한 공부로 성서에 몰두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신자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의 한없는 보화를, 특히 거룩한 전례 안에서 나누어야 한다. 사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³⁾》 공의회는 이러한 원칙을 강조함에 있어 아우구스티누스와 히에로니무스 두 교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된 문장은 선생-학생이라는 도식 하에 훌륭한 학생이 아니라면 또한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히에로니무스 성인의 말씀은 성서에 대한 앎과 그리스도에 대한 앎 사이에 등식 관계가 성립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 두 교부를 인용한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기 위함 같이 보인다. 두 교부 모두 성서에 관한 한 읽기와 공부, 그리고 묵상하는 데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 있어 비단 이 두 교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부들이 성서의 중요함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비근한 예로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당시 경주용 말의 족보를 환히 꿰고 있는 사람들이 (요즘으로 치면 다른 예를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작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이 몇 개인지 혹은 그 편지의 수취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책망을 늘어놓은 대목은 자못 의미심장하다.⁴⁾ 또 동방교부들 가운데 성 아타나시우스는 봉헌생활을 하는 동정녀들에게 영성생활의 규범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매순간 어떤 일을 하든지 성서를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때 당신의 두 손에는 성서가 들려져 있어야만 합니다.》⁵⁾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다. 성서를 비추는 새로운 태양! 축성된 동정녀가 아침을 열기 전에 일어나 신랑을 기다리며 묵상하는 생명의 책장에 비추는 여명!

이 같은 가르침과 흡사하게 서방의 히에로니무스 역시 자신의 여(女)제자들에게 성서읽기를 열심히 할 것을 자주 권고하곤 했다. 또한 언젠가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영성생활에 관한 소논문을 보낸 바 있는 동정녀 데메트리아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성서를 공부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를 읽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부담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마치 휴식을 취하듯 영혼에 양분을 주는 시간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⁶⁾ 같은 말을 과부 푸리아에게는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말한 바 있다 :《성서에 대하여 당신께 권고하건대, 날마다 성서의 몇몇 구절이라도 꼭 마음에 새겨두십시오. 어쩌면 주님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의무가 바로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정신, 곧 예쁜 수를 놓는 수틀에 채워야 할 자수의 땀이 채워지기 전에 휴식을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⁷⁾ 다음으로 동정녀 에우스토키오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 22에서 히에로니무스는 하느님께 영혼을 봉헌한 사람이 지켜야 할 수덕 신비생활의 규칙을 종합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자주 성서를 읽어야 하며, 또 많은 구절을 암기할 것을 강조한다 :《자주 성서를 읽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성서를 암기하십시오. 성서를 손에 쥐고서 잠이 들어 화들짝 깰 정도까지, 그리고 거룩한 책장이 졸음에 끄덕이는 당신의 얼굴을 받쳐줄 때까지》그러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신랑에게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성서를 읽습니까? 그것은 당신께 말씀을 건네시는 그분을 경청하는 것입니다.》⁸⁾ 마지막으로 딸을 교육함에 있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레타에게 쓴 편지를 보기로 하자:《매일 성서의 주어진 구절을 되뇌이십시오… 기도에 앞서 성서 봉독이 따라야 하고, 성서봉독에 앞서 기도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⁹⁾ 이런 교훈을 주는 이유는 바로 히에로니무스에게 있어서 성서를 사랑함은 모든 악덕들을 쳐 이길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며, 또한 지혜를 얻는 데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성서에 관한 학문을 사랑하면 당신은 육체의 악덕들을 사랑치 않을 것입니다.》¹⁰⁾《성서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그리스도) 또한 당신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 “성서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서는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성서를 흠모하십시오. 그러면 성서는 당신을 감싸안을 것입니다.”… 당신의 혀는 그리스도 외에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것들이 아니라면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것입니다.》¹¹⁾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성서는 우리 영혼에게《비옥한 목장》이며《환희》를 안겨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서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들은 그 말씀에서 양분을 얻어 순결한 마음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¹²⁾ 또한 성서는 우리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거울》이요,¹³⁾《구름에 싸인 하늘》로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단비를 희망하게 해 준다. 즉 우리 안에 풍성한 결실이 맺어지도록 감미로운 영적인 양분을 준다는 것이다.¹⁴⁾ 끝으로 히포의 성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를《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성서의 구절구절은 주님의 깊은 상념이 배어 있는 그분의 마음으로 우리는 그것을 열정적으로 묵상함으로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¹⁵⁾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성서 연구가 무척 중요한 일이라 강조하면서 특별히 영혼을 돌보는 목자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일이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그 자신이 거의 강제적으로 사제서품을 받게될 때, 그는 자신의 주교 발레리우스에게 성서를 공부할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청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사제)이 교회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훌륭한 성과를 내는 데 꼭 알아두어야 할 권고들이 성서에는 들어 있을 법합니다. 아니 확실히 들어 있습니다. 사제는 죄인들 무리 한가운데에서도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가며, 또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한 신자들이 바라는 삶을 죽기까지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뿐일 것입니다. 즉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곧 기도하고 연구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성서를 연구하는 데 시간이 없다는 것이 사제에게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의 입을 빌려 대답한다. 아니올시다! 그런데 이 말은 여러 가지 산적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제의 외적 활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내린 대답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충 역시 사랑으로 무장하여 처리한다면 훨씬 용이하게 풀릴 수 있다. 어쨌든 주님의 포도원을 돌보는데 지극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이 때 주님은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내 포도원을 어떻게 잘 경작해야 할지를 배우는 데 어찌 시간이 없다는 것이 변명이 되겠습니까?》¹⁶⁾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성인은 한적한 가운데 성서연구에 몰입하고픈 바람이 충족되지 않는 아쉬움을 늘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의 피로함을 위해 쉬어야 할 여가 시간 모두를 성서연구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은 그의 갈증을 해갈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나 보다.《시간의 방울들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나이다… 낮도 당신의 것, 밤도 당신의 것, 찰나마저 당신 눈짓 하나로 날아가는 것, 님의 법, 그 그윽함을 잠잠히 생각하도록 틈을 주소서… 주님! 저에게서 당신 일을 이루시옵고 그것 또한 드러내소서. 님의 목소리는 곧 나의 기쁨, 그 소리야말로 온갖 즐거움 위에 빼어나나이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는 것을 제게 주소서. 제가 사랑하고 있나니, 그것 역시 당신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은총을 버려두지 마옵시고 그것을 목말라 하는 당신 풀잎을 던져두지 마옵소서. 당신의 책(성서)에서 얻어지는 것이면 무엇이건 당신께 아뢰어드리고, 그 안에서 찬미의 소리를 들으오리다.》¹⁷⁾

사제가 성서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수도자들이 성서를 공부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사제는 성서를 단지 수덕과 영성의 차원에서 필요로 할 뿐만이 아니라 사목적인 이유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선생이 되기 전에 먼저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히에로니무스가 네포티아누스에게 한 권고를 들어보자 :《항상 성서를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서가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르쳐야만 하는 것을 공부하십시오. 신앙의 말씀에 친숙해져야 하며, 또 배운 바를 공고히 하여야겠습니다. 그럴 때 당신의 가르침은 올바른 가르침에 토대를 두는 것이며, 건전한 가르침이 아닌 것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¹⁸⁾ 이상의 말을 한마디로 하자면 “가르쳐야 할 바를 공부하라.”는 것이리라. 사제의 설교가 잡스런 수다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심오한 하느님 신비에 관한 깨우침의 메아리가 됨이 마땅하다 하겠다 : 히에로니무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사제의 설교는 성서를 읽으면서 느낀 맛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신의 설교가 건조한 낭송이거나 내용 없이 짖어대어 허공으로 사라지는 잡담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 신비를 실생활에 잘 접목시키는 그런 설교가 되기를 바랍니다.》끝으로 성인은 내용 없이 떠들어만 대는 설교가들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편지를 마친다 :《(이런 자들은) 무식한 군중으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 값싼 말의 기교나 내용 없는 달변으로 짖어댑니다.》¹⁹⁾ 아, 히에로니무스가 자신의 제자 네포티아누스에게 한 칭찬의 말을 우리 사제들 모두가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열심히 성서를 읽고 이를 고이고이 되새김으로써 자기 마음을 (고스란히) 그리스도에 관한 도서으로 만들었다 (Pectus suum bibliothecam fecerat Christi).》²⁰⁾

2. 제관(Sacerdos)과 제물(Sacrificium)

이상으로 우리는 사제직무의 두 가지 측면 즉 선생이며 동시에 학생이 되어야 하는 모습을 살펴보았고, 아울러 이러한 신분의 양면성에 부합되는 의무를 생각해 보았다. 즉 사제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선생으로서 신자들을 가르치되, 그 이전에 먼저 자신을 파견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학생으로서 배운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제의 또 다른 사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사제는 우선 미사성제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제관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 만일에 그렇지 못할 경우 사제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만을 본받은 사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모습을 닮지 못한 사제는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은총의 선물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사제로서 그리스도를 이야기할 때 제관과 제물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 앞에) 우리를 위한 승리자이며 희생제물 이옵니다.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승리자가 되시었습니다! 또한 당신 앞에 우리를 위한 제관이며 (희생)제물이십니다. 이렇게 제물이 되셨기에 또한 제관이 되셨습니다….》²¹⁾ 그리스도의 대리자 역시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야 되는 당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에 그리스도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제는 성사적 품위로써 제사를 바치는 제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사랑을 통하여 대사제이며 제물이신 분을 온전하게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제의 영혼에 성품성사로써 각인된 신비한 효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즉 사제의 정체를 규정하는 특성은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원형으로 한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성화를 위해 마련된 도구라는 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가톨릭 신학의 놀라운 풍요로움을 보게 되며, 이 신비는 특별히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보다 깊은 심오함으로 나타난다. 사제직과 인호와 성체성사를 연결하여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으나, 독자들에게 깊은 묵상을 권유하고 싶다. 어떻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제직의 양면, 즉 제관과 제물의 모습이 사제에게 나타날 때 비로소 파견하신 분과 닮아질 수 있을 것이다. 신분으로서의 제관과 제관의 당연한 자세로서의 제물, 즉 이 두 가지 요소는 지워지지 않는 인호의 존재론적 성격과 그 인호의 효과를 더욱 값지게 하는 사제직의 실존론적인 성격을 말한다. 이 두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은 확실한 구원의 보증이요, 가장 잘 주님이신 예수를 닮는 것이라고 하겠다.

많은 교부들은 우리가 다루는 주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어도 간접적으로나마 많은 묵상거리를 던져주었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가 그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칭호 중에 사제는 특별히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과 ‘봉헌된 제물(Hostia)’ 이라는 이름을 깊이 새겨 간직해야 한다고 말한다.²²⁾ 그러면서 자신이 사제직으로부터 도망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말한다. 즉 자기 스스로를 생각할 때 아직 자신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의 희생제물이 될 수 없기에 감히 미사성제를 통해 제물을 드리는 제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도망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찬미의 제사가 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사제 자신이 스스로를 살아 있는 거룩하고 흡족한 제물로 봉헌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완벽한 제사장이시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앞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분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분의 요구를 따른 후에야 비로소 장차 있을 엄청난 신비들을 미리 맛보는 참된 희생제사를 온전히 거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외적이며 내적인 우리들의 감정들 하나하나를 정화하는 길고 힘든 작업을 수반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성령의 법 안에 놓이게 되고 그리스도의 인간적이며 신적인 특권에 진정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제직은 단지 엄청난 파멸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위대한 이에게 있어 악은 막중한 직무를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으나, 소인배는 아주 작은 무게, 즉 자신의 힘이 미치는 무게일 때에만 안심할 수 있는 법입니다. 만약 너무 무겁다면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해 짓눌려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²³⁾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우리들의 주제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희생제물에 관해 빈번히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희생제물과 하느님의 도성 안에서의 희생제물, 그리고 봉헌된 영혼인 희생제물 등을 말한다.「신국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에 보이는 희생제물은 성사로서 보이지 않는 희생제물의 거룩한 상징입니다.》²⁴⁾ 즉 진정한 희생제물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우리 모두는 그분과 결합하여 있다 (totum sacrificium ipsi nos sumus).²⁵⁾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된 하느님의 도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편적인 희생제물을 드리며, 온 교회 역시 미사성제 안에서 유일한 희생제물을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유일한 희생제물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한다. 그렇다면 성부께 의합되는 유일한 희생제물과 결합된 교회의 희생제물은 무엇을 의미할까?《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것을 통해 인간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봉헌하는 것이며 그분께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써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만을 위하여 살아가려는 목적으로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신도 절제로써 제어만 된다면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 또한 마땅히 하여야 할 바인 하느님만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마침내 불의의 무기로 죄에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무기로써 하느님께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²⁶⁾… 이상이 육신에 대한 것이라면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영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타오르는 영혼은 세속적인 탐욕(concupiscientia)에서 해방되어 변하지 않는 원형이신 분의 대전에 자기의 꼴을 맞추어 그분 보시기에 흡족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과 이웃에 대한 자선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 또한 진정한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무리인 구원된 도성은 유일한 대사제에 의해 보편된 희생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 대사제는 우리를 위하여 수난을 당하시면서 종의 모습으로 당신 자신을 봉헌하셔서 마침내 우리 모두가 자신을 머리로 한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봉헌이 종의 모습으로 드리는 희생이었으며 바로 이것을 통해 그분은 중재자이시며 그 모습 안에 제관과 제물이 되시었습니다.》²⁷⁾

이상의 말이 사제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겠다. 사제는 자신이 드리는 미사성제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와 그 신비를 늘 새롭게 하도록 불리움 받은 자임을 묵상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묵상이 깊어질 때 그는 인류의 구원에 마땅히 스스로 참여해야만 한다는 다짐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모든 행동이 거룩한 제물과 하나되도록 온몸을 사르는 사도적 투신을 감행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영원을 향한 제물이 된다는 것이 매일의 삶 속에 조그마한 희생으로 나타남은 당연하다 하겠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보자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이 (모든 것을) 내주겠고 나 자신까지도 내어주겠습니다.》²⁸⁾ ;《여러분이 바치는 신앙의 제사와 예배를 위하여 내 피가 제물로 쏟아지더라도 나는 이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모두와 함께 즐거워하겠습니다.》²⁹⁾

이 말씀들은 많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사제의 삶이 마땅히 하느님 대전에 맞갖은 희생제물이 되어야 하며, 또 그 모습이 어떠해야 함을 전부 다 이야기하려면 굉장히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정리해 보자면 자기를 죽임(mortificatio), 고통(dolor), 대속(expiatio)이라는 말로써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다. ‘자기를 죽임’ 이라 함은 사제가 하는 모든 활동과 일들 안에서 무질서한 욕망이 있다면 그것들과 벌이는 싸움을 말한다. 즉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³⁰⁾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적인 욕정을 끊어버림으로써 무질서한 갈망을 다스리는 일이다. 이 말은 이미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정화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사제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못 박혀야 하며 죽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고통’이란 사제가 사제로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모든 번뇌와 아픔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글쎄 언제 사제는 가장 아파할까? 아마도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 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때 드러나는 자신의 한계를 바라볼 때이며, 또 신자들의 오해와 무관심, 반발 등 때로는 모욕과 중상모략에 휩싸일 때일 것이다. 아울러 좋은 의도가 곡해되고 비난받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간혹은 선량한 교우마저 사제직무수행에 걸림돌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사제에게 심각한 충격과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걱정하게 만든 장본인임에도 자신은 그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모습을 볼 때의 황당함. 이렇게 사제의 고통은 신자들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같은 동료와 가지는 껄끄러움, 특별히 장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아픔 또한 작지 않다. 비록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각자의 한계에서 오는 오해와 잘못된 판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사도적 활동과 사목생활을 제한하거나 아예 못하게 하는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통들이 사제직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좀더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참여케 한다는 점을 알아야겠다. 이런 사제의 번뇌와 아픔은 인류구원의 제사에 올려지는 훌륭한 예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사제에게 외적인 사목활동이 줄어들면 오히려 희생제물이 될 기회는 더 많이 찾아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후자가 더욱 값지고 훌륭하다고 하겠다. 만약 어떤 사제가 병으로 인해 누워 있다고 할 때 세상의 눈으로는 더 이상 사제로서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활동할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제는 제관이며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이며, 아울러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는 눈에 보이는 봉사보다도 더욱 값진 봉사가 될 수 있는 법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병환으로 사목활동을 중단했거나 더 이상 할 수 없는 사제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은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이 말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병환 중에 있을 때 친구 프로푸트루스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이다 :《영적으로 보면 끄떡없이 좋기만 합니다. 주님 보시기에도 당신이 허락하신 영혼의 모습이 좋아 보이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그러하지 못하여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치질로 인한 염증을 치료하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걷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 이것마저 좋아 보인다면 나 또한 좋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이어서 그 이유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그러니 낮에는 인내로 견디어 내고, 밤 또한 동요 없는 평온함을 유지하도록 기도해 주시옵고, 설령 죽음의 그늘 밑을 걷는다 해도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어 모든 두려움을 없이 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³¹⁾

이 대목에서 사도 바오로의 아름다운 모범을 살펴보기로 하자.《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 받음을 기뻐하며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웁니다.》³²⁾ 사도가 골로사이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 수행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 말이다. 또 이어서 우리는 이런 사도의 계획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특별히 11장에서 감동과 놀라움을 자아내는 그의 활동을 보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성공적인 예보다는 자신이 당한 고초와 번민을 이야기해 주며, 결론적으로 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히브리 사람이요, 이스라엘 사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자기가 다른 그리스도의 대리자들보다 더 앞서는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더 많이 고통당하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그들이 그리스도의 봉사자들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합니다만 나는 훨씬 더 그렇습니다.》엄청난 수고와 감옥살이, 매질, 죽을 위험들 등 그리스도 때문에 당한 고초를 이야기한다.《유대인들에게서 사십 대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으며, 세 차례나 채찍으로 매질 당했고, 또 한번은 돌로 얻어맞았으며, 세 차례 파선을 당했고, 밤낮 하루를 큰 바다에서 떠다닌 적도 있습니다.》이어서 여행 중에 당했던 고통과 위험을 덧붙인다.《여러 차례 여행하는 동안에도 강물의 위험, 강도들의 위험, 동족들로부터의 위험,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 도시에서의 위험, 광야에서의 위험, 바다에서의 위험, 가짜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해야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끝으로 온갖 종류의 어려움, 고통, 자기를 죽임을 이어서 말해준다 :《수고와 고역, 수많은 밤새움, 굶주림과 목마름, 수많은 단식, 추위와 헐벗음》³³⁾ 이상의 믿기지 않는 드라마 같은 현실을 사도행전은 증언해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모든 경우를 다 읽어보는 것이 좋겠으나 여기서는 단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만 짚어 보기로 하겠다. 우선 모욕과 박해,³⁴⁾ 돌팔매질,³⁵⁾ 매질³⁶⁾, 감옥에 갇힘³⁷⁾ 등을 사도행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외적인 고초 외에도 어쩌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는 내적 고통 역시 볼 수 있다. 즉 자신에 의해 세워진 모든 공동체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 풀어야만 할 고민거리, 극복해야만 할 어려움 등을 우리는 그의 서간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도 내가 날마다 감당해 내야 하는 짓눌림, 그 모든 교회들에 대한 걱정이 또 있습니다. 누가 약해진다면 나 역시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걸려 넘어진다면 나 역시 분노하지 않겠습니까?》³⁸⁾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도 바오로는 오래된 지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치 육신에 돋친 가시와 같이 사탄의 심부름꾼이 내지르는 주먹질같이 고통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다. 따라서 세 번이나 주님께 이를 없애 달라 청하였으나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전해준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고 있다. 그 능력은 허약함 가운데서 완성되는 법이다.》이 말씀에 위로 받은 사도는 인간의 나약함 안에 주님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나약함과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여 그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러 있도록 더욱더 기꺼이 내 약점들을 자랑하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이라면 약점도, 오만불손함도, 역경도, 박해도, 그리고 곤경도 만족합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³⁹⁾

이제까지 ‘자기를 죽임’과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 ‘대속’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대속이라는 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께 불경을 드린 것을 기워 갚기 위해 자기를 죽이는 것이요,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리라. 사제는 모름지기 투사, 아니 그보다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은총의 이름으로 죄악과 거슬러 싸우는 사람이다. 사실 사제는 매일 미사를 통해 희생제물의 대속을 성사 안에 거행하며, 또한 죄들이 속죄되어야 마땅함을 전례 안에서 늘 기억한다. 사제는 삶 안에 항상 대속이라는 말을 깊이 묵상하고, 또 그리스도교의 연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가 다른 이들을 위해 대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함 또한 지당한 일이 될 것이다.

3. 목자(pastor)이며 한 마리의 양(Pars Gregis)

지금까지 우리는 사제가 누구이며 어떠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다루면서 사제에게 관상생활과 활동이 적절한 균형과 일치를 이루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이런 일치를 설명함에 있어 선생이면서 동시에 학생이요, 또 제관이면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사제의 모습을 살펴보았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목자로서의 사제와 양 떼의 한 부분으로서의 사제의 모습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양 떼의 한 부분인 사제, 이를 좀더 쉬운 말로 하자면 양 무리에 섞인 한 마리 양이 아닐까? 어쨌든 이 말에는 길들이는 목자에 순응하는 양으로 어딘가 약하고 (자기 혼자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무엇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사제는 목자이기에 안내자이며, 안내자가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특권을 가진다 : 권한과 권위, 명령할 의무, 다른 이를 복종시킬 권리 등. 그러나 사제는 양 무리 속의 하나로 그 역시 안내를 필요로 하고 안내자의 지휘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제는 분명 목자이다. 즉 “목자들의 목자”인 분에 의해 명을 받은 목자이며, 이를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위해서는 목자들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목자이신 분 아래서는 여러분과 함께 양들일뿐입니다.》⁴⁰⁾ 또한《여러분들을 위해 나는 주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과 함께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⁴¹⁾

사제는 하느님 백성을 다스리는 책무를 받은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십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뜻을 파악할 줄 알아 그분의 모든 명령을 따를 수 있어야만 한다. 이미 앞에서 사제가 “교회의 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필자는 또 다른 사제의 신분 즉 사제는 또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분을 가지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양떼 중의 하나’ 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분의 양 무리 중 한 마리 양이 된다는 것은 목자이신 분의 음성을 아는 데 있다. 즉 하느님 백성을 안내하는 사람이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만약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 말을 잇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슬픈 결과를 알고 있으며, 불행히도 교회 역사 안에 보였던 것 역시 사실이다. 예수께서 양과 양 떼의 비유를 통해 양들의 의무가 ‘목소리를 들음’과 ‘그에 따르는 순명’임을 가르쳐 주신 것을 묵상해보자.

비유 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양들은《목자의 음성을 알아》그를 따른다고 하셨고, 또 그들은《낯선 이의 목소리를 모르기 때문에》그를 피해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이 비유를 설명하시면서《나는 착한 목자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압니다.》⁴²⁾는 말씀을 하셨다. 즉 그리스도의 양 떼에 속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그분의 음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그분의 생각과 은밀한 속내까지도 알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자신의 양 떼가 아닌 그분의 양 떼를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자가 자기에게 직무를 준 분의 목소리를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들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생각은 복음과 교회의 전통 안에 계속해서 메아리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지금 다루는 우리의 주제에 대해 무엇이라 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특별히 계시헌장 2장, 교회헌장 3장을 주의깊이 읽어볼 것이다. 사제는 아주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감각 (Sensus Christi)을 소유해야 하며, 또한 교회의 감각 (Sensus Ecclesiae)을 가져야 한다고 공의회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감각(Sensus)은 신앙(pietas)의 선물로서 묵상과 공부를 통해서 구비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또한 생각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은 양이 해야 할 또 다른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목자를 따라감이다.《나를 따르시오.》⁴³⁾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사제가 삶의 매순간 어떤 소임을 맡든지 간에 명심해야 할 규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를 따르시오.》또한 예수 자신이 우리 모두에게 직접 모법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뜻을 채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오셨음을 밝힌다.《내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⁴⁴⁾ 자기 전 생애의 음식이며 걸어가는 길의 좌표요, 자신의 모든 행위를 판가름하는 잣대를 말함이다 :《…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⁴⁵⁾《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고》⁴⁶⁾바로 이것 때문에《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어 여느 사람의 모양으로 드러냈습니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⁴⁷⁾《이제 그들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들을 받아들였으며 제가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저를 파견하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⁴⁸⁾ 고뇌와 번민의 시간에도 예수께서는《아버지, 아버지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⁴⁹⁾ 라고 말씀하시며, 맨 마지막에는《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⁵⁰⁾고 하셨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또 다시 교부들의 예를 볼 필요는 없겠다. 이미 앞서 그들이 원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르기 위하여 사제․주교직을 받아들였던 것을 살펴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제직을 수락하는 경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가 자신의 주교 발레리우스가 주교직을 제의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놀라의 파올리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겠다 :《…지극히 공경하올 아버지이신 발레리우스 주교께서는… 내가 사제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에게 자신과 함께 주교직을 수행하자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셨습니다만, 나는 그 중압감이 두려워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의 집요함과 백성들의 뜨거운 성원에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또 이미 앞서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할 때 회피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⁵¹⁾

하느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기쁨으로 그 뜻을 완수함. 글쎄! 사목생활에 따르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사제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자신의 직무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비밀이 또한 이 안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결로 사제는 이중적인 그의 모습을 일치시키고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리하여 사도직 활동에 떠밀려 모든 것이 헛됨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하는 파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묵상을 마감하는 데에 교회의 가르침을 옮기면서 끝내고 싶다. 이제껏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이 사실 그 안에서 해결된다고 할 수 있고, 두 종류의 삶의 일치와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 삶으로 보여 주신 모범이기도 하다 :《사제들의 삶의 일치는 참으로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셨던 주 그리스도를 교역수행의 모범으로 삼을 때이다.》⁵²⁾

아직도 어려움은 남아 있다. 이런 모든 해결이 아직은 이론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삶의 모습이 사제 양성과정 안에 그리고 많은 사도직 수행을 위한 수도회의 정신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관상생활 속에서도 주어진 사도직 수행에 박차를 가하면서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계속되는 도전으로 우리 모두의 끝없는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