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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라] amor [영] love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서로 사랑하라" - 신약성서에서 이러한 사랑의 정의가 내려지기 전에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나름으로 내린 순진한 인간적 사랑의 개념을 승화시켜야 했으며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실현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상 서로 다른 성질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동시에 쾌활하며 포용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다. 인간은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사랑하는데, 동물, 직장, 동료, 친구, 친척, 자식들 그리고 이성(理性)을 사랑한다. 다윗의 역사, 솔로몬의 아가 등에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은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는 안다는 것이 곧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회에 대한 충성과 친근한 유대관계는 완전히 영성적이고 자유로운 자발성과 합쳐졌다(창세 24:49, 여호 2:12, 룻기 3:10, 스바 7:9). 성서에 기록된 인간은 사랑의 위험성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나(잠언 15:17), 그들의 사랑의 개념은 종교적 심리학을 넘어서 풍부하고 확고한 인간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수많은 질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느님같이 위대하고 순수한 분이 스스로를 낮춰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해 준다면 인간은 어떻게 이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여러 종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그들 나름으로 노력해 왔으며 때로는 한 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견해를 낳기도 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간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끌어내려 완전히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성서는 이러한 인간적 고민에 대한 확연한 해답을 주고 있다. 즉, 하느님은 인간과의 사랑의 대화의 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의 사랑의 이름으로 인간들을 구속하고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구약성서에서 : 창조설화(창세 1:2-3)에는 '사랑'이라는 용어가 직접 기록되지 않았으나 아담과 하와가 대상이 되고 있는 선하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들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셨고 이를 명하심으로써 하느님이 사랑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담은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들에 대해 주인처럼 행세함으로써 죄를 지었으나 사랑의 신비는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더욱 깊어져 그에게 구원의 언약을 하기까지에 이른다(창세 3:15).

  하느님은 이교도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의 친구가 되게 하셨으며(이사 41:8) 하느님은 그의 사랑을 우정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그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된 것이다(창세 18:17).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의 요구들에 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특히 예언자들에게 개별적 사랑을 쏟으셨고(아모 3:7), 이들을 기쁨으로 채우셨으며 이 예언자들은 야훼의 사랑과 진노의 증인이 되었다(아모 3:2). 하느님은 항상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신랑이며 그의 정열적이고 시기심 많은 사랑은 단지 배은망덕과 배반으로 보상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은 죄보다 강하며 한때 고통을 당하나(호세 11:8) 사랑은 용서하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새롭고 뜨거운 사랑으로 되살아난다(호세 2:21, 예레 31:3, 20:22, 에제 16:60-63, 36:26).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은혜로우며 이스라엘은 그의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숭배와 복종을 통하여 표현되며(신명 11:13, 19:9)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신명 4:9-28, 30:15-20). 그러나 이는 오직 하느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의 껍질을 벗겨 할례를 베풀어주고 그들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야훼를 사랑하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2. 신약성서에서 :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극적인 사랑의 대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오심'은 무엇보다도 성부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은 구약성서의 예언들과 언약들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시고(요한: 1:18), 구원자 메시아이며 그의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사랑을 명백히 하셨다(로마 8:39, 요한 3:1, 4:9, 루가 2:11, 마르 1:11, 9:7, 12:6, 요한 3:35, 10:17, 15:9, 골로 1:13). 성부의 사랑은 아무도 침범치 못할 방법으로 그 자신을 표현하며 우리는 새로운 계약의 완성과 인류와 '신랑'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결합을 깨닫게 된다.

  성부의 아들을 영접함에 있어 인간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자만심과 오만을 버려야 하며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로마 5:6, 1요한 4:10-19).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요한 3:16)는 것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완전한 인성 안에서 그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그의 사랑의 열렬하고 진실됨을 이해시키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다. 그의 이러한 인성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참고문헌] R.O. Johann, The Meaning of Love, Westminster 1955 / J. De Finance, La Motion du Bien, Greg 1958 / G. Gilleman, The Primacy of Charity in Maral Theology, Westminster 1959 / F.E. Crowe, Complacency and Concern in the Thought of St. Thomas, 1959 / C.S. Lewis, The Four Loves, London 1960 / F.D. Wilhelmsen, The Metaphysics of Love, New York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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